1. 연구주제 : 일본의 ‘대외 위기론’과 팽창의 역사적 구조
1) 1차 년도의 주제인 「일본의 대외 위기론의 형성」을 고대 ㆍ 중세 ㆍ근세 ㆍ 근대로 구분하여 각 시대 별로 분석하였다.
일본은 全 역사시대에 걸쳐서 한국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한 ? 일 관계는 우호적 관계, 적대적 관계, 경쟁적 관계라는 표현 그대로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를 갖는다. 따라서 일본이 한반도를 상대로 스스로 어떤 위기의식을 조장하고 정형화시켜 나갔는가에 대한 연구가 일차적인 과제이다. 각 시대의 전공자로 구성된 4人의 연구전임인력은 「일본 대외 위기론의 형성」을 각 시대별로 분석하여 일본사 전체에서 보편적 논리를 찾는데 역점을 두었다.
2) 2차 년도의 주제인 「일본의 대외 팽창의 패턴」을 동일한 방법으로 분석하였다.
「일본의 대외 위기론의 형성」이라는 공동의 연구가 끝나고, 다음 단계로 일본이 東아시아 특히 한반도를 대상으로 어떻게 무장하고 행동하였나를 파악하였다. 이것이 곧 각 시대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일본의 대외 팽창의 패턴」이라는 말할 수 있는 현상이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대외 위기론’의 분석에 이어서 각 시대의 ‘대외 팽창의 패턴’을 분석하여 최종적으로 연구를 완성하였다.
3) 일본의 「대외 팽창」과 「대외 위기론」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연구로서 기존 연구와 차별성을 갖는다.
지금까지 국내외 연구는 일본의 팽창을 침략으로 규정하고 각 시대별로 각기 다른 결론을 도출하는 정도에서 마무리 되었다. 현재는 일본사를 종합적이고 통일적으로 연구하는 접근 방법이 필요한 시점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일본의 대외 위기론의 형성」과 「일본의 대외 팽창의 패턴」라는 주제를 東아시아 안에서 통시대적으로 분석하는 새로운 연구성과 임에 분명하다. 결론적으로 본 연구는 연구사적 측면에서 향후 기대되는 바가 매우 크다.
4) 마지막으로 본 과제에는 본 연구소의 전임교원인 연구책임자 1인와 공동연구원 2인, 그리고 연구교수인 전임연구인력 4인이 공동으로 연구에 참여하였다.
2. 연구 주제 : 일본근대국가 형성기 <日本史像>의 형성 연구
본 연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구체적 과제를 설정하여 연구를 진행시키고자 한다. 1) 근대국가와 고대 한일관계사像 2) 일본고대국가의 형성에 대한 근대 일본인의 이해 3) 왜구와 쇄국에 대한 근대 일본의 평가에 관한 연구이다.
1) 근대국가와 고대 한일관계사像에서는 고대의 한일관계에 대한 일본인의 이미지가 어떻게 근대국가에 투영되었으며 거꾸로 근대 일본의 현실 인식 및 필요성이 어떻게 고대의 한일 관계 역사상을 만들어갔는가를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다.
2) 일본고대국가의 형성에 대한 근대 일본인의 이해에서는 일본 고대국가로서의 율령국가의 형성 과정을 근대의 일본인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를 조명하였다.
3) 왜구와 쇄국에 대한 근대 일본의 평가에서는 근세 막번체제 하의 대외관계를 규정하는 논리로서 현재 일본학계에서는 <쇄국체제>와<海禁정책>의 두 견해를 연구하였다.
3. 프로젝트
1) <근대 일본 역사 사가들의 동아시아상 연구>
동북아역사재단의 지원을 받고 박현숙 소장 외 3인의 공동연구로 진행한 <근대 일본 역사 사가들의 동아시아상>에 대한 연구 결과물이 동북아역사논총에 특집으로 게재
2) <일본의 대외위기론과 팽창의 역사적 구조 연구>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고 일본역사상의 대외 위기론의 실체, 대외 위기론과 연계되어 등장하는 팽창과정을 검토하여 동북아 세계의 구조를 이해하려는 연구. 그 결과물이 <일본의 대외위기론과 팽창의 역사적 구조>라는 단행본으로 출간
3) <일본내 한국인 집단거주지의 역사적 연구>
학술진흥재단의 연구 지원을 받고 김보한 외 4인이 한일 상호간 집단거주지의 역사적, 통시대적인 연구를 진행한 결과 그 결과물을 사총에 특집으로 게재
4. 안중근 사건에 대한 열강의 대응과 일본의 한국병합
안중근은 1907년 이전에는 교육운동과 국채보상운동 등 계몽운동을 벌였고, 그뒤 러시아에서 의병활동을 하다가 1909년 초대조선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조선침략의 원흉으로 지목하여 하얼빈[合爾濱]에서 사살된 인물이다. 따라서 1907년 이전의 이토 히로부미미(伊藤博文) 즉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후 일본정부의 지도자로서 국내정치와 대외정책에 깊숙이 관여한 메이지정부의 지도자의 조선 인식과 정책을 러일전쟁 이전 시기에 초점을 맞춰 해명하려는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1873년 ‘정한론’정변을 통해 정권의 핵심 직책인 참의(參議)에 오른 이후 번벌(藩閥)정권을 이끌면서 궁중개혁, 화족제(華族制) 및 내각제의 창설, 헌법기초 등을 통해 근대입헌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조약개정, 청일전쟁, 러일협상 등 일본의 대외정책과 침략을 주도한 명실 공히 메이지정부의 최고 지도자였다.
특히 조선과 관련해서는 1905년부터 1909년에 걸쳐 직접 ‘통감정치’를 펼쳤을 뿐만 아니라 ‘정한론’정변, 운양호사건, 갑신정변, 갑오개혁, 을미사변 등에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을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일본의 조선 침략과 식민지화 과정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메이지정부의 정책을 전면에서 이끌었던 이토 히로부미의 조선인식과 행동을 검토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으나 ‘보호통치’기를 제외하고 이토의 조선인식과 정책에 대해서는 충분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 연구에서는 지금까지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러일전쟁 이전 이토의 조선에 대한 인식과 정책을 실증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일본의 조선 침략과 식민지화과정의 실태 해명에 기여하고자 한다.
5. 고대 일본의 도래계 직능집단에 관한 연구
고대 일본의 도래계 직능집단에 대한 연구
최초의 도래인들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일본(큐슈를 중심으로)에 벼농사나 토기등을 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일본서기』『고사기』에 전해지는 한반도인의 도래가 제철의 기술이나 철제의 농구, 관개(감개) 기술 등을 전한 사람들로 기재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고구려와 백제의 멸망 이후 수많은 망명자들이 발생하였고, 지금까지 일본에 없던 최신의 기술이나 문화를 전하거나 조정의 정치에 크게 관계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도래인이 일본열도의 통합이 진전되고 율령제 국가로 발전하는 단계에서는 어떻게 규정되어 갔는가 하는 문제에 중점을 두고 본 연구를 진행하고자 한다.
6.『심리상담사 자격증 과정』 운영
A. 운영 개요
1) 운영기간: 2010.08.24 ~ 2010.12.16(총 32강, 96시간)
※ 매주 화,목요일(10:00 ~ 13:00)
2) 장소/인원: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212호 / 40명
3) 교육내용
- 심리상담사, 청소년 상담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전문내용
- 상담학개론부터 실습에 이르는 복합 프로그램
- 실습을 특화한 현장 위주의 수업
4) 교육방법 : 위탁교육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
5) 사업비 : 15,000천원
B. 운영 실적
1) 교육목적
- 전문적인 심리 상담과정 운영을 통한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장 심리상담사 자격증 취득
- 경력 단절 여성 및 은퇴자 중심의 사회경험이 풍부한 이들을 대상으로 새 출발 교육 실행
- 각급 학교 및 평생교육 등 전문 상담인력으로 추진
2) 운영횟수 : 총 32회(96시간)
3) 수료결과
- 과정수료 : 총 40명 중 37명 수료
- 자격취득 : 37명(수료생 전원 자격증 취득)
C. 운영 성과
1) 지역주임의 성공적 사회 진입을 위한 길잡이 역할 강화
2) 취업 지원 교육프로그램 제공을 통한 지역 주민의 취업 및 재취업 지원
3) 특성화된 교육기회를 통해 전문가로서의 자긍심과 애향심 고취
4) 지역 주민의 학습에 대한 요구를 적극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체제와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그들의 자아실현을 위한 기초를 제공
5)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평생교육의 제공을 통한 지역주민 삶의 질 향상과 사회통합에 기여
6) 자격증 취득을 통한 개인 경력 개발에 도움
7) 지역일자리 창출로 지역경제 활성화 도모